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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나무와 달"에 대한 검색결과1229건
  • [비공개] 배추 살리기

    배추 살리기 / 문 정가을장마가 그치고 모처럼 햇살이 눈부신 아침부삽을 들고 밭으로 나갔다. 밭이라고 해봐야지인으로부터 얻은공원 옆 한 평 정도 되는 땅이다. 한달 전 심어놓은 배추 모종이내 손바닥만하게 잘 자라고 있던 중에 태풍을 맞아버린 것이다. 수십 개의 송곳으로 찍어내린 듯 일제히 구멍 숭숭난 이파리들이 너덜거린다.살아날 수 있으려나. 영양제를 뿌려주고 아침 저녁으로 눈도장을 찍는 중이다. 부삽으로 흙을 돋우어주자 손끝에 아기 배추의 재롱이 느껴진다. 순간, 내 가슴에 온통 푸른 물이 든다죽은 시도 살릴 수 있는 힘이 쏟구친다.
    나무와 달|2019-09-14 01:33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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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달을 품은 호박전

    달을 품은 호박전 / 문 정올해는 보름달을 볼 수 있으려나. 일기예보를 컴퓨터에서 찾아보다가 하릴없이 사진 폴더를 클릭하자 수년 전의 추억들이 우르르 쏟아진다.며느리 셋이 대추나무 그늘에서 생전 시어머니가 좋아하던 호박전을 지졌다큰형님은 아주버님과 다투었던 일 한 점을 홍고추처럼, 작은 형님은 큰 아들의 취업소식을 쑥갓처럼 올리면, 막내인 나는 가지런하게 채반에 담는 역할을 했다. 삶의 매운 맛을 조금씩 알아가던 새댁인 나는 형님들의 노련한 전에실고추 몇 개를 고명으로 올릴 뿐이었다. 점점 꽃밭으로 변해가는 채반 주변에 조카와 손자들까지 빙 둘러앉아 저녁내내 시끌벅적했던그 넓은 마당그 많던 시댁 식.......
    나무와 달|2019-09-13 09:49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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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방심(放心)

    방심(放心) / 문 정추석이 바로 코 앞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넉넉하게 차례 음식을 장만하려고 한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기 한 마리가 화장대 앞으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치 축지법을 쓰는 듯 이 쪽에서 보이는가 싶으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보인다. 물 샐 틈 없이 막힌 요새를 뚫고 들어온 그 노력이 가상하여 잡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작은 미물에게도 넉넉해지고 싶은 한가위다. 더군다나 처서가 지난 모기는 입이 비뚤어졌다지 않는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안방을 빠져 나왔는데 새벽 두 시쯤, 얇고 가느다란 사이렌이 짧게 고막을 훑고 지나갔다. 불을 끄면 들리고 켜면 안 보이고, 모기와 정신이 엎치락뒷치락.......
    나무와 달|2019-09-11 07:29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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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어느 날의 스케치

    다이어리에 만나야 할 사람, 들어야 할 강의, 읽어야 할 도서 목록이 빼곡하다. 지나간 달력에 기록된 것들을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절반 이상이 계획한대로 되지 않고 없어지거나 변경되어 있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들은 하루에도 여러번 일어난다. 수강 중, 커피를 쏟아 어쩔 줄 몰라하는 뒷 좌석 그녀에게 화장지를 꺼내주려고가방을 뒤졌는데 도통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수다를 떠는데 화장지가 불쑥 가방 속 책갈피에서 딸려나왔다. 그녀는 알까. 나의 이 황당함을 창피함을 미안함을내 노트에 한 줄이 추가된다. '생각한대로 되는 일은 없다.' 좌충우돌 모노드라마는 매일 이.......
    나무와 달|2019-09-10 10:12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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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담쟁이

    담쟁이 / 문 정줄곧 벽에 붙어 생각하며 살아왔다. 수많은 철학자들처럼'나는 어떻게 태어났고 어디서 왔는가 또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평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전문가들은 나의 뿌리를 찾아 수 년째 애를 태우고 있지만, 사방이 막힌 컴컴한 어둠을 뚫고 되짚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삶은 밀려나지 않기 위해버티어 온 족적. 한 때는 혹처럼 잘 붙어 살면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다. 버티는 법만 배워 왔다. 이제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법, 혼자 사는 법도 배워야할 때다. 오늘 당장은 살아야 하기에 손목과 발목에 힘을 보태지만 나의 최종 목표는 홀로서기다.
    나무와 달|2019-09-09 10:12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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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나도밤나무

    초강력 태풍이 올라온다고주변 시설물 단속하라는 문자는 하루종일 이어졌다. 인천까지 올라오지 않은 틈을 타서 걷기 운동을 하러 공원에 나갔더니 사람들은 떨어진 과실들을 줍고 있는데 주로 대추다. 그런데 바로 옆 알토란 같은 밤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아알아보니 먹을 수 없는 나도밤나무과의 열매라고 한다. 태풍의 위력이 어떤지는 잘 안다. 사라, 매미, 루사, 볼라벤 등 우리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그 이름들은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비닐하우스 골조가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전봇대가 쓰러지고 덩치가 큰 나무가 대파처럼 뽑히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았었기에 가게문을 지키며 무사히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
    나무와 달|2019-09-08 08:34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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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순산을 향하여

    순산을 향하여 / 문 정울음의 수위가 저리도 높았었나. 창가에 기대어 태초의 소리를 듣는다.내 고향 애월은 쪽빛 바다 옆 작은 마을. 능소화가 만선처럼 동네마다 가득 필 쯤이면 나뭇잎도 푸른 축제를 준비하고 아이들은 물새가 되어하루종일 파도와 숨바꼭질을 했다. 매미 소리가 나뭇잎과 뒤섞이면 악단이 꾸려졌는데,어느 날 그 소리의 궤적을 쫓아간 적이 있었다. 울음의 근원은 땅 속이었다.땅 속 언어가 지상의 언어로 탈바꿈할 때마다 내지르는 환호성.더딜 수록 크게 터져나오는,어느 굼벵이의 순산을 지켜보다가 날이 저물고 말았다. 도시로 모여든 매미들은 인생 탈바꿈이 목표지만 인고의 순산은 멀기만 하다. 탈피를 모.......
    나무와 달|2019-09-06 12:47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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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곰팡이꽃을 기다리며

    곰팡이꽃을 기다리며 / 문 정콩을 푹푹 삶는다. 제 아무리 단단하던 육질도뜨거움을 못 이기면제 몸을 풀기 시작하는 법손끝으로 눌러보아 껍질이 벗겨지면 메주 만들 준비를 한다. 푸대에 담아 콩의 형체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짓이긴다. 오래 뭉갤 수록 모양 만들기가 쉽다고 그러셨다. 동글 납작하게 빚어 볼까 상자처럼 빚어 볼까. 바닥에 보름달과 청사초롱들이영역을 넓히는 동안 시름은 온데간데 없다. 소꿉놀이 같은 과정이 끝나면이제 곰팡이가 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그래야 장이 되니까. 노트에 써 둔 글에 곰팡이꽃이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나무와 달|2019-09-04 04:48 p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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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테리우스가 나타났다

    좀 이르다싶은 초등학교 시절나의 이상형이 생겨났다. 순전히 만화 영향이었다.긴 머리 테리우스는 뛰어난 외모는 물론이고 온화한 말투, 다정한 미소, 상대에 대한 배려심 등 인간 종합선물세트였다. 현실과의 괴리감은 살 수록 더해서티비 속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만화 캐릭터일 뿐이었는데,지금, 한 남자를 보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에재력있는 집안이라는 든든한 배경에 서울대 출신에군계일학의 외모로 눈에 띄는데테이프를 돌린 듯한 기자들의 쓰레기 질문에도 진정성있게 답을 하고 있다.기자들은 돌아가며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11시간 동안 뭇매를 때려봤지만 그에게서 그 어떤 헛점도찾아낼 수 없었다.......
    나무와 달|2019-09-03 07:51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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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완벽한 죽음

    완벽하게 죽을 수도 있나?있다.유튜브를 보다가 감동적으로 생을 마치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암선고를 받은 어느 노인의 이야기다.시한부를 앞두고 죽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였던 건.작은 집으로 아내의 거처를 옮기고 재산의 일부는 사회에 환원하고 또 일부는 자식들에게 나눠주고나머지는 죽을 자금으로 따로 마련해 두었다는 것. 더욱 놀라운 것은 심 정지가 일어났을 경우 자식들에게 연명 의사를 묻지 말 것을 의사와 합의를 보고 아내와 사인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이 온전할 때 자식과 손자들에게 영상 편지를각자에게 남겼는데 모든 영상에 공통으로 들어간 내용은 이렇다. '한달에 한번 하늘을 보거라. 내.......
    나무와 달|2019-09-02 10:46 am|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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