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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수혈
코스모스가 거의 질 무렵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활짝 웃으며 품에 안기며 달려들며 근육이 붙었다며 팔을 접어보인다. 딸 같은 아들의 애교에 피로가 싹 가신다. 코스모스처럼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21년전 내게로 오던 날을 기억한다. 산부인과 간호사가 아들이라고 내 얼굴 가까이 갖다대었을 때 얼굴을 돌렸던 일을. 딸이 아니어서 얼마나 섭섭했었는지 모른다. 그 아들이 딸 역할을 제대로 한다. 딸 같은 아들이 갑자기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급성 장꼬임이다. 두 살 때도 장때문에 응급실로 달려갔었다. 어릴 때부터 나타난 현상이라 또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이번에는 아니다. 삼 년 전보다 증상이 더 심하다.아침 식사로.......추천 -
[비공개] 중복
뜨거운 날의 연속이다. 초복때는 이제 더위의 시작이구나 생각했다. 더위 까짓껏 더워봐야 샤워한 번 하면 없어질 땀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해보다 더 잘 이겨내라고 삼계탕에 전복까지 넣어서 끓였다. 닭도 먹고 전복도 먹고 수박도 먹었지만 더위는 더 기승을 부렸다. 어제 중복의 날씨는 정말 더위가 사람 잡는구나 생각했다 나지 않던 땀띠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니 금년 더위는 만만하게 보아선 안되겠다 싶다. 그래도 날짜는 매일 바뀌고 있다. 어느 덧 7월이 기울고 8월이 다가오고 있다. 8월의 달력에 입추가 들어있다. 이러다 가을도 훌쩍 지나가버리고 그 뒤에 무시무시한 겨울이 성큼성큼 걸어올 것이다. 겨울을 너무 싫어하기에.......추천 -
[비공개] 동백기행문
계절마다 특징이 있는 제주는 날마다 만원인 듯 싶다. 많은 인파들이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항에 멸치떼같은 사람들이 푸른 바다를 보며 환호를 한다. 사월에 제주 방문을 한 것은 제주4.3사건 취재 때문이었다.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제주4.3사전 기념관을 찾았다.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라서 큰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다. 거기서 만난 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아른거린다. 동백꽃들이 효수를 당한 사건이라고. 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시골로 들어서니 집집마다 동백나무 한 그루씩 심어져있는게 보인다. 어릴 때 뛰어놀던 마당에는 동백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붉은 꽃잎은 포대기처럼 노란 수술을 아기를.......추천 -
[비공개] 설빔과 떡국
설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설빔을 준비하셨다. 그 때는 집집마다 대대로 물려오는 재봉틀이 있었다. 우리집 재봉틀은 설날이 다가오면 특히 바빴다. 아이들을 넷이나 두었으므로 설 때 입힐 옷을 준비하려면 한달 전부터 준비해야 했다. 시장에 가서 옷감을 사오고 재단을 하고 재봉틀로 박았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세대였던 할머니는 아마도 일일이 손바느질을 했을 것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혹시 베틀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시대가 변천하여 재봉틀시대가 된 것이다. 어머니의 시대에 맞는 설빔 준비과정은 우리에게 신나는 일이었다. 며칠이면 옷 몇 벌이 뚝딱 나왔다. 어머니가 옷을 만들다 버린 천조각을 얻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 하였.......추천 -
[비공개] 알 품기
알 품기 씨앗 하나가 가져오는 엄청난 수확의 기쁨을 안 것은 귀농 때였다. 참깨 한 알은 눈에 띄지도 않거니와 손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작다. 후우 불면 날아가버릴 정도로 가볍다. 흙을 파고 서너 알만 심으라는 이웃의 말을 듣고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최대한 조금 집으려 해도 뭉터기로 잡혔다. 내 신체 끝부분에 해당하는 작은 면적에서도 그것들은 너무도 작아 보였다. 그렇게 작은 씨앗이 과연 뿌리를 내릴까 싶은 의심마저 들었다. 내가 그들에게 하는 일이라고는 열심히 물을 주고 풀을 뽑아주는 일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그들이 키워내는 싹을 보는 일이 전부였다. 푸른 잎들이 울긋불긋해지던 어느 날 씨앗이 너무 여물었는지 톡 터.......추천 -
[비공개] 어린이가 잠을 잔다 - 방정환의 어린이 찬미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다. 볕 좋은 첫 여름 조용한 오후이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오오!! 어린이는 지금 내 무릎 위에서 잠을 잔다. 더할 수 없는 참됨과 더할 수 없는 착함과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그 위에 또 위대한 창조의 힘까지 갖추어 가진, 어린 하느님이 편안하게도 고요한 잠을 잔다. 어린이는 복되다. 이때까지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복을 준다고 믿어왔다. 그 복을 많이 가져온 이가 어린이다. 그래, 그.......추천 -
[비공개] 마르티니크, 환상의 섬
마르티니크 "Why, Am, I, Here?" 떠듬떠듬 발음이 어눌하다. 낯선 이국 서양 사람들 틈에서 울부짖는 그녀의 심장이 내 심장을 관통한다. 이 여인은 왜 여기에 있는가, 영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은 욕심에서 시작된 그녀의 여정은 참혹하다. 짐을 옮겨다 주는 조건으로 받을 돈을 생각하며 그녀는 비행기에 올라타고 파리에 내리는 순간 마약 밀매단으로 잡혀간다. 몇 일 후, 프랑스 파리 감옥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이송된다. 너무나 멀어서 이름도 생소하다. 이승에서 저승가는 길 사이에 있을 법한 멀고도 먼 작은 섬에 갇힌다. 낯선 땅의 어두침침한 감옥에서의 생활은 가혹하다 못해 처참하기 그지없다. 주불대사관의 나태한 행동과 무.......추천 -
[비공개] 귀향
귀향 나무와 달 저는 꽃이었습니다. 이름없는 꽃으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땐 꿈이 있었지요. 꽃처럼 예쁘게 살고 싶은 꿈 제가 살던 곳도 꽃피는 산골이었습니다. 꽃같은 친구들과 뛰어놀았지요. 온세상이 꽃천지인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먼 이국땅으로 가게 되었지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말에 겁도 없이 따라나선 거지요.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요. 그럴 줄 알았더라면 꽃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지요. 이파리가 뜯겨나가는 수모를 당했지요 매일매일 꽃잎이 한 장 한 장 뜯겨질 때는 하늘도 멍들었습니다 내 살들이 한장씩 떨어질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며 참았습니다. 꼭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숱하게 다짐도 했습니다. 이.......추천 -
[비공개] 는 시다 - 사랑의 물리학/김인육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운명이라는 것이 만약 있다면 맘껏 빠져들고 싶다바다처럼 허우적거리며 구름처럼 정처없이 그 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더라도 숨을 꼴깍거리고 싶을 때가 있다. 드라마 가 잔잔한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첫사랑의 느낌을 이렇게 잘 담을 수가 있을까첫사랑은 아픔이고 순수이고 기쁨의 결정체다.그 모든 것을 듬뿍 담아 버터처럼 설탕처럼 만들어 놓았다. 900년을 견뎌낸 남자에게서는 진한 국물같은 것이 뚝뚝 떨어지고19살 소녀에게서는 상큼발랄함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는이 두 개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첫사랑이라는 유기적 감정드라마를 본 것이 아니라 시를 보았다 '사랑의 물리학'이란 시가이 시.......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