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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언리시 (unleash)
‘언리시’는 개나 맹수의 줄을 푼다는 뜻이다. 무언가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해방한다는 의미다. 가능성과 잠재력은 흔히 계발한다고 하지 해방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능성과 잠재력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고정관념과 편견에 묶여 자유로이 쓰지 못했을 뿐이다. 가능성과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다. 이를 지나치지 않고 재발견하고 재정의하는 것이 언리시다. 언리시는 내게 없는 것을 새로 만들거나 갖추려 하는 대신 이미 가진 것을 다시 해체하고 재결합하는 일이다. (책, 언리시 중에서)추천 -
[비공개] 언리시 (unleash)
‘언리시’는 개나 맹수의 줄을 푼다는 뜻이다. 무언가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해방한다는 의미다. 가능성과 잠재력은 흔히 계발한다고 하지 해방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능성과 잠재력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고정관념과 편견에 묶여 자유로이 쓰지 못했을 뿐이다. 가능성과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다. 이를 지나치지 않고 재발견하고 재정의하는 것이 언리시다. 언리시는 내게 없는 것을 새로 만들거나 갖추려 하는 대신 이미 가진 것을 다시 해체하고 재결합하는 일이다. (책, 언리시 중에서)추천 -
[비공개]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대안이나 옵션이 없는 상황을 얘기한다. 뭔가 구차한 변명을 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근데 뜻밖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 중 어쩔 수 있는 일이 많다. 다니기 싫은 직장을 처자식 때문에 평생 어쩔 수 없이 다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처자식 입장에서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봐야 할까? 상이라도 줘야 할까? 다른 옵션은 없었을까?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다 억지로 다니는가? 왜 변화의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시키는 건 아닐까? 어쩔 수 없다는 말보다는 어쩔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솔직하지 않을까?추천 -
[비공개]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대안이나 옵션이 없는 상황을 얘기한다. 뭔가 구차한 변명을 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근데 뜻밖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 중 어쩔 수 있는 일이 많다. 다니기 싫은 직장을 처자식 때문에 평생 어쩔 수 없이 다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처자식 입장에서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봐야 할까? 상이라도 줘야 할까? 다른 옵션은 없었을까?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다 억지로 다니는가? 왜 변화의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시키는 건 아닐까? 어쩔 수 없다는 말보다는 어쩔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솔직하지 않을까?추천 -
[비공개]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탄식의 말이다. 다른 삶을 살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다는 말이다. 참 슬픈 얘기이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변화의 기회가 없었는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기회인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젊은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정말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대신 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다 갈 것이라고 외치고 싶다.추천 -
[비공개]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탄식의 말이다. 다른 삶을 살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다는 말이다. 참 슬픈 얘기이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변화의 기회가 없었는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기회인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젊은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정말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대신 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다 갈 것이라고 외치고 싶다.추천 -
[비공개] 야망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참 많이 들었던 구절이다. 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좌절했다. 야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러하다. 근데 야망이란 무엇일까? 야망의 사전적 정의는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이다. 참 밋밋하고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근데 어원을 보면 다르다. ambition의 어원은 라틴어 암비티오 ambitio인데 ‘돌아다니다’란 뜻이다. 정치에 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꿈을 펴기 위해 온갖 곳을 다 돌아다닌다. 야망(野望)의 '야'가 들 야(野)인 것도 야망이 있는 사람은 들로 산으로 돌아다닌다는 뜻일 것이다. 나 같은 집돌이와 야망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추천 -
[비공개] 야망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참 많이 들었던 구절이다. 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좌절했다. 야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러하다. 근데 야망이란 무엇일까? 야망의 사전적 정의는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이다. 참 밋밋하고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근데 어원을 보면 다르다. ambition의 어원은 라틴어 암비티오 ambitio인데 ‘돌아다니다’란 뜻이다. 정치에 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꿈을 펴기 위해 온갖 곳을 다 돌아다닌다. 야망(野望)의 '야'가 들 야(野)인 것도 야망이 있는 사람은 들로 산으로 돌아다닌다는 뜻일 것이다. 나 같은 집돌이와 야망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추천 -
[비공개] 배우기 위해서는 꼭 실패를 해야 할까?
정보가 범람하다 보니 별생각 없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실패에서 배우라, 자주 실패하라"라는 것들이 그렇다. 과연 실패하는 것이 좋을까? 자주 실패한다는 것은 성공일까? 꼭 실패에서 배울 수 있을까? 실패하지 않고 배울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은 것 아닐까? 실패에서 배우라는 말은 실패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일 수 있다. 실패가 끝은 아니고 거기서 배우고 일어서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고 맞는 말이다. 근데 정말 뭔가를 잘하고 싶다면 그 분야에서 진짜 잘하는 사람, 즉 선수에게 배워야 한다. 일을 잘하고 싶다면 일을 진짜 잘하는 사람을 관찰해야 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진짜 글을 잘 쓰는 사람에.......추천 -
[비공개] 악성 댓글
“네가 틀렸다는 걸 알려주고 말겠어”라는 사명감으로 넘치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글이다. 남을 비판하지만 사실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다. 남을 비난하면서 스스로 나은 사람으로 착각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악성 댓글을 많이 달수록 본인의 삶은 더욱 구질구질 해진다. 악성 댓글의 대상자 역시 달라지는 일은 없고 가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삶은 고달픈데 뾰족이 풀 곳이 없는 지질한 인간들의 취미활동이다. 익명으로 누군가를 욕하면서 상대적으로 쾌감을 느낀다. 쓰레기통에 꼬이는 파리와 비슷하다.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