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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충분하다, 쉼보르스카
충분하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지음), 최성은(옮김), 문학과지성사, 2016왜 내가 새삼스럽게 외국 번역 시집을 읽으며 감탄을 연발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시는 원문으로 읽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글로 번역된 시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아마 언어 너머로도 전해지는 시적 감수성, 또는 해석의 가능성, 그리고 지역과 언어를 관통하며 흐르는인생과 세계에대한 태도 같은 것에감동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특히 쉼보르스카의 시들은 한글로 옮겨지더라도 그 시적 매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는 역자의 노고일 것이기도 하겠지만, 시 자체가 가진 힘을 그만큼 대단한 것일 게다.내가 잠든 사이에뭔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어딘가에 숨겨 놓았거나 잃어버린 뭔가를,침대 밑에서, 계단 아래에서오래된 주소에.무의..추천 -
[비공개] 파울 첼란 / 유대화된 독일인들 사이에서, 장 볼락
파울 첼란 / 유대화된 독일인들 사이에서 Paul Celan / unter judaisierten Deutschen장 볼락Jean Bollack(지음), 윤정민(옮김), 에디투스, 2017로 잘 알려진 파울 첼란의 연구서가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운 일이다. 마흔아홉의 나이에 파리 센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시인. 아우슈비츠에서 부모를 잃고 그 자신도 구사일생으로 유대인수용소에서 살아난 사람.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말한 아도르노가 그 말을 번복하게 만든 작가. 하지만 시집을 읽지 않는 시대, 한국 시인도잘 알지 못하는 요즘, 파울 첼란의 시를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이 때,이 책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다.파울 첼란의 시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울림은, 번역된 시임에도 불구하고, 깊고 진하다. 길지만 를 옮기면,죽음의 푸가새벽의 검은 우유..추천 -
[비공개] 서양철학사, 윌리엄 사하키안
서양철학사 History of Philosophy윌리엄 사하키안William Sahakian(지음), 권순홍(옮김), 문예출판사1.서로 얽혀있는 것이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찾고 이를 지성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인류의 분투가 필사적으로 이어졌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있는 이 세계가 불완전하고 저기 완전한 세계가 존재하고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관계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것의 역사를.철학의 입장이 아닌 예술사의 입장에서 이 곳과 저 곳의 대비는 세계에 대한 비관적 인식의 시작이며, 어떤 절망이, 보이지 않는 슬픔이 이 세계 전반에 물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라톤적 신비주의가 밀려들 것임을 예감케 한다. 플라톤이 말했던 이데아는 중세의 신으로 변화하고 칸트에게 있어서는 다시 ‘물자체’가 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추천 -
[비공개]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안경을 바꿔야 할 시기가 지났다. 나를,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신경쓰이게 한다. 글자가 흐릿해지는 만큼 새 책이 쌓이고 잠이 줄어드는 만큼 빨리 지치고 상처입는다. 변화는 예고 없이 방문하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곤 사라지며 흔적을 남긴다.처리해야 할 일들이 빠르게 늘어나 거의 매일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노트북이 가벼워진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가벼워질수록 이 녀석이 자주 나타난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까페에서, 심지어 집 거실에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메일이 오고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온다.미팅을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시간을아끼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어와 메일을 확인하고 일을 한다. 그렇게 오후에서 저녁이 되었다. 또 야근이었다.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추천 -
[비공개]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황현산(지음), 난다(문학동네 임프린트)"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 괴테, 중에서다행이다. 이 책이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힌다는 건 좋은 일이다. 불문학자인 황현산 교수가 그동안 여기저기 기고한 글들을 모은 이 산문 모음집은 출간 후 몇 년간많은 이들의 밤을 조용히 채웠을 것이다.글들은 대체로 짧고 읽기 편하며 담백하다. 실은 이런 글 읽기도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탓에, 이 책의 유명세는 다소 낯설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이 책을 읽었던 것일까.나같은 독자에게 이 책은 약간 밍밍한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취향의 문제일 뿐, 이 책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편안하게권할 수 있는 산문집이다.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추천 -
[비공개] 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La Pesanteur et La Grace시몬 베유 Simone Weil(지음), 윤진(옮김), 이제이북스신은 오직 부재不在의 형태로 천지만물 속에 존재한다.- 183쪽나이에 따라 읽는 책, 읽히는 책은 달라진다. 새삼스럽게 지루하던 고전이 재미있어질 수 있고 웃고 열광하던 대중소설이 식상해질 수도 있다. 이건 책의 탓이 아니다. 나이듦의 신비일 뿐이다.성당을 다닌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그렇다고 미사에 쓰이는 모든 기도를 외우는 것도아니지만, 아주 조금은 시몬느 베유(1909-1943)의 마음을 알 것같기도 하다.이 책은 세계2차대전, 그야말로 전쟁통에 쓰여진 짧은 아포리즘 모음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존재를 끌어당기는 ‘중력’ 앞에서 신을 향해 상승하려는 신앙의 은총에 대해 이야기한다.종종, 자주 기독교적 테마가 극적인 불행, 견딜 수 없는 고통,..추천 -
[비공개] 스탠포드 인 부산 호텔 출장
호텔 복도 창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대도시에서 대도시로의 출장. 그냥 평범한 가을날. 바다가 아닌 곳에서 바다 앞 도시로. 그렇게 서울에서 부산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산시-지금은 창원시로 바뀐-에서 다녔고 가끔 부산에 갔던 터라, 왜 서울 사람들은 부산에 가고 싶어할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출장으로 그간의 오해가 풀렸다고 하면 과장일까(아니면 내가 서울 사람이 다 된 것일까).부산 출장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고, 휴가를 가기도 했으며, 그 때마다 어떤 연유에선지 몰라도 해운대 근처 호텔에서 묵었다. 많은 이들이 광안리나 해운대를 좋아하지만, 너무 관광지의 느낌이 강하다고 할까. 멋진 수평선과 높은 파도로 뒤덮이는 넓고 긴 백사장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무수히 넘쳐나는 외지인들의 일부에 휩쓸려 들어가 관광객으로만 머..추천 -
[비공개] 미술 작품 구입에 대하여
어느 블로그에 들어가 주말에 전시를 보았다는 글을 보고, 전시를 보러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왜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적을까,짧게 생각하고 적었다. 아직도 작가들을 만나면 작품 가격 높이지 말고 일년 생활비, 작품 제작 기간을 고려해서 최대한 낮은 가격에 팔면서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소장될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하지만, 그게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또한 잘 알기에, 말하곤 후회한다. 어찌되었건내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고 떠나온 미술계에 대해선 아직도 관심이 가고 수시로 전시를 보러가고 작가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탓에, 미술작품을 판매하는 것이나 구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대중화시키는 건 참 멀리 있는 일이라는 게, 힘 빠지게 한다.미술작품을 사기 위해선 여러 제반 조건이 따라야 한다. 돈은 그 ..추천 -
[비공개] 미래의 소비자들, 마틴 레이먼드
미래의 소비자들 The Tomorrow People마틴 레이먼드 지음, 박정숙 옮김, 에코비즈, 2006겨우다 읽었다. 책은 2006년에 구했으니, 무려 십 년이 넘게 걸린 것인가. 2006년이면,합정동에서 모 이동통신사 사내보를 만들고 있던 시절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잡지 편집을 해보지 않아, 첫 한두 달은 고생했지만, 나름 이동통신과 IT, 경영전략에 특화된 전문적인 콘텐츠를 기획하여 만들었다(고 자부심을 가져도 될까). 하지만 그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좋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더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을,작년 말 이 책을 서가에서 꺼내 읽기 시작하면서 너무뒤늦게 읽음이안타까웠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책이지만,지금 읽어도내용이탄탄하고 흥미진진하다. 다만이 책이 나왔을 십여년 전에는 꽤 첨단 트렌드를 소개하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다소 일반화된 내용도 ..추천 -
[비공개] 정유재란 1597, 국립진주박물관
정유재란 15972017.07.25 - 10.22, 국립진주박물관진주성 안에 국립진주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지난 추석 연휴, 우연히 방문한 곳에서 뜻하지 않은 전시와 만났고 그 짧은 후기를 올린다. 각 지역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지만, 내가 방문한 곳 대부분은 전시 프로그램이 빈약했다.그런데 이번 전시는 꽤 알차다. 간단하게 전시 내용을 진주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인용한다.1부는 ‘정유재란 이전 강화협상과 조선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1593년 명과 일본 간의 강화협상이 시작된 때부터 강화협상이 결렬될 때까지의 주요 인물과 사건을 다룬다. 2부는 ‘전쟁의 재개와 일본군의 공세’라는 주제로 정유재란 초기 일본군이 칠천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남원성, 황석산성, 전주성을 연이어 함락하고 전라도와 충청도를 공격하는 시기를 다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