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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세숫대야 비빔밥 No.10
중학교 때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친구가 한 반에 적어도 두세 명은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다들 도시락을 꺼내놓고 책상을 붙이기도 해가며 친한 여럿이 모여 맛있게 먹는데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처음엔 몰랐다가 다른 친구들을 통해 알았다. 평소에는 함께 떠들고 수업받고 놀던 친구들이 점심시간만 되면 교실에서 사라졌다가 다 먹었을 즈음에 들어오거나 아니면 운동장 한쪽에 앉아 놀러 나오는 친구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평소에는 친구였다가 밥을 먹을 때는 모르는 사이처럼 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도시락을 나눠 먹는 것이었다. “야! 도시락 함께 먹자.” 밖으로 나가려는 친구를 붙잡아 함.......추천 -
[비공개] 밥 먹고 가 - 행복한 달팽이 No.9
2012년 2월. 여수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느지막이 아침을 먹은 우리 가족은 여수의 명물인 갓김치를 사서 가져 갈 요량으로 돌산도로 향했다. 사전에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 본 ‘죽포식당’이라는 곳에 가기 위해서다. 그곳 갓김치가 맛있다는 글이 많아서 이왕이면 소문난 곳의 김치를 사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을 설정하고 찾아갔는데도 두 번이나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그만큼 밖으로 나와 있 는 간판이나 어떤 표식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작은 입간판 하나만 서있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식당이었다. 식당 입구 좌우에 갓김치를 만들법한 작은 작업장 겸 보관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작업장 사이로 난 조그만.......추천 -
[비공개] 사탕 세 개 - 행복한 달팽이No.8
“아빠는 우리랑 안 놀아주고 또 나가?” 7년 전 어느 주말 아침에 아이들이 현관문까지 따라 나와서 볼멘소리를 했다. 벌써 서너 번째다. 취미로 시작한 직장인밴드 활동이었는데 봄 시즌을 맞아 공연 일정이 점점 더 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일반 공연이 아니고 정신요양원 봉사공연이다. 일반 공연 같으면 데리고 나가서 객석에 앉혀놓고 있으면 되는데 이곳은 사정이 다르다. 무엇보다 관객들의 개성이 다소 특이해서다. 분위기도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는 꽤 낯설 것이고 공연 중간에 돌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는 게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아이들이 곧 울음이 터질.......추천 -
[비공개] 돌김과 육쪽마늘 - 행복한 달팽이 No.7
남자에게 군대란 난생 처음 겪는 독특한 트라우마이자 그걸 통과했다는 자부심이 되기도 해서 두고두고 군대를 다녀온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기 일쑤다. 그렇게 자랑하듯 고생담을 늘어놓으며 한편으로는 더럽게 패인 상처를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권력과 계급의 구조 안에서 자유가 통제되고 사회에서는 상상치 못한 비상식적인 일들로 군인이 된 남자들은 여러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한국에 태어나서 환경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남자들이 나이가 되는 순대로 서로 돌아가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아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군대를 갔어도 요지경은 요지경일 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몇 안.......추천 -
[비공개] 노년의 사랑 - 행복한 달팽이 No.6
칼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할퀴는 날씨임에도 할머니는 폐지를 모으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목도리를 여러 겹으로 얼굴까지 칭칭 감아 눈만 나오게 완전 무장을 하고 차가운 거리로 나가서 폐지를 모은다. 그렇게 하루 종일 모은 폐지를 고물상에 가져다주면 얼마의 돈으로 바꿀 수가 있다. 할머니는 몸으로 일해 그 돈을 생산한다. 폐지를 모아서 파는 할머니에 대한 인상은 나에게 세 가지로 남아있다. # 1. 생활정보지 회사에서 근무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매일 혹은 매주 발행되는 생활정보지를 골목 입구나 가게 앞 등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배포대를 두고 새벽부터 트럭을 몰고 이곳저곳을 돌며 배포를 한다고 한다. 그런.......추천 -
[비공개] 물 먹인 종이 - 행복한 달팽이 No.5
땅거미가 내려 앉아 어스름한 시장 골목 귀퉁이로 가로등 불빛 한 자락이 스며들었다. 그 불빛에 비춰가며 할머니가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폐지를 모아 파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 안에 앉아 왼쪽에 쌓인 종이를 오른쪽으로 하나씩 옮기면서 특이한 행동을 반복했다. 자세히 보니 왼쪽에 펼쳐져 쌓여 있는 종이 박스며 전단지 같은 폐지들을 하나씩 떼어내서 그 위에 물을 골고루 바른 다음에 오른쪽으로 다시 쌓아 올리고 있었다. ‘저렇게 하면 박스의 접힌 부분이 반듯하게 펴지는 걸까?’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할머니! 왜 그렇게 종이에 물을 바르고 계시는 거예요?” 겨.......추천 -
[비공개] 선생님도 사람이다 - 행복한 달팽이 No.4
"네 부모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데 준비물도 하나 안 챙기는 거냐?" 중학교 3학년 교실. 한 여학생을 앞에 세워놓고 여 선생님은 큰소리로 짜증을 내며 나무랐다. 학생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같은 반 아이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희들끼리 수군대던 아이들은 이윽고 선생님을 경멸의 눈초리로 쏘아보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상했을 친구의 입장을 알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은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던 딸은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했다. “선생님이 말을 거칠게 하는구나. 자기 부모를 ‘뭐하는 사람들인데’라고 몰아붙이니 말이다.” “그것 때문이.......추천 -
[비공개] 동네 주정뱅이와 꼬마 친구 -행복한 달팽이 No.2
“인사만 잘해도 굶는 일은 없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인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이런 표현으로 강조했다. 인사성이 밝아야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존중을 받으며 좋은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잔소리로만 듣던 그 소리를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유는 조금 달랐다. 신혼 때는 가장 번성한 도심의 나름 윤택하다는 아파트에 살았는데 사업에 고전하게 되면서 우리 집은 점점 변두리로 언덕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전세금이 싼 곳을 찾다 보니 그렇게 몇 번의 이사를 해야 했다. 가는 곳마다 주변 환경은 처음 살던 집에 비해 점점 더 열악해졌다. 어둡고 삭막한 분위기에 툭하면 거칠게 찢어지는 다툼.......추천 -
[비공개] 버스에게 인사하기 -행복한 달팽이 No.1
1971년 충주 외곽의 시골 초등학교. 가슴에 손수건을 달아매고 신입생 줄에 서서 내 인생 처음으로 입학식이라는 걸 했다. 갓 입학한 햇병아리 신입생들은 어미 닭을 좇듯 선생님 뒤를 졸졸졸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은 낯설었고 같은 반이 된 아이들 대부분이 처음 보는 다른 동네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사는 마을은 제각각이었다. 한 시간을 넘게 걸어야 학교에 올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어중간한 거리에 살고 있던 나는 처음 만나 사귀게 된 친구들과 등하굣길에 만나는 일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미루나무가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신작로로 나가면 멀리서부터 오는 친구들과 합쳐서 함께 걸어갈 수 있었다.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추천 -
[비공개]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달팽아, 나 지금 겁나게 빠르지? 발이 안 보일 정도로. 안 보이지? 안 보이지?" "나는 이런 속도로 총알같이 어디든 달려갈 수 있단다. 부럽지?" 달팽이가 말했다. "나는 너처럼 빠르게 땅을 박차고 뛰어가진 못해. 하지만 나처럼 끈끈하고 진하게 이 땅을 느끼며 사는 이는 아마 없을 거야." 둘의 대화를 땅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추천